노무현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순신 장군에 관한 질문입니다.


흔히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말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 지휘당시 전투중에 죽은 병사보다 군율에 의해 처형당해 죽은 병사가 더 많았다.'

이것 때문에 한때 E순신이란 별명으로 불린 적도 있다는데
(워해머 해보신 분은 아실듯...-_-;;)

그만큼 이순신 장군의 전투능력이 탁월하고 군율은 엄격했다는 의미라 하는데,
문제는 정말로 처형당해 죽은 자가 전사자보다 많았는가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혹시 이것에 대해 제대로 된 통계 가지고 계신분 있으십니까?

전사자까지는 어느정도 알겠는데 처형자는 좀처럼 찾기 힘드네요.
일단 당장 검색한 결과로는 이순신 장군의 지휘때는 전투중에 243명의 사상자가 있었다는 정도인데,
이것도 틀리다면 지적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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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炎帝 | 2008/12/03 10:39 | 트랙백(1)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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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수갈단 산하 자폭단 at 2008/12/03 12:02

제목 : 이순신 ;;;;;;;;;;
이순신 장군에 관한 질문입니다. 본문에... '이순신 장군 지휘중에 전투중에 죽은 병사들보다 군율에 의해 처형당해 죽은 병사가 더 많았다.' 이것 때문에 한때 E순신이란 별명으로 불린 적도 있다는데 <-- !!!! E순신 E순신 E순신 조선 수군이 잘 싸우는 이유가 있었군.. 무시무시하군하!!!!...more

Commented by 떠리 at 2008/12/03 11:55
E순신!!! 크하하하핫!!
Commented by 炎帝 at 2008/12/03 14:06
저도 처음 저 별명을 듣고 좀 깼죠..;;
Commented by zert at 2008/12/03 12:23
지금 제가 집이 아니라 밖이라서 정확한 데이터를 제공해 드릴 수는 없지만, 난중일기나 장초를 참고해 보면 대략적인 수치를 추산 할 수 있습니다.

대충 이런 식으로, "(난중일기) 도망치려던 스무 명을 잡아 주동자와 핵심 인물을 처형했다." 혹은 "전원 처형했다."

임진장초에는 전투 중에 사망한 조선수군에 대한 기록이 확실한데요, 그건 그만큼 통제사께서 꼼꼼하신 분이기도 합니다만, 경상/중상/사망 등등으로 세분화해서 기록 할 수 있을 정도로 전사자 수가 적었습니다.

한산도 대첩 때는 대략 40여명 사망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구체적인 숫자는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Commented by 炎帝 at 2008/12/03 14:06
이렇게라도 도움을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뿐입니다.(__)
급하게 필요한 것은 아니니 천천히 해주셔도 괜찮습니다.^^
Commented at 2008/12/03 12:2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시와랑 at 2008/12/03 12:44
ㄷㄷㄷ e 순신...
확실히 ㅡ
제가 군대에서 교육훈련 받을때 한 중위님이 이 말씀하신게 기억나네요.

ㅡ 이순신은 희대의 꼽창(후임이나 근무자를 지독하게 갈구는 상사의 은어)이었다.ㅡ
Commented by 炎帝 at 2008/12/03 14:05
이유없이 갈구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렇게까지 비유하는건 좀 그렇군요.

이순신 장군 휘하의 장수중엔 이순신의 하인이 남의 물건을 훔쳤다는 이유로 두들겨 팼다가
이순신에게 끌려가자 군율을 엄하게 적용하지 않으면 누가 따르겠냐고 말해 이순신이 중용한 장수도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Commented by rezen at 2008/12/03 13:44
처벌기록은 난중일기와 임진장초를 참고하시면 많이 나옵니다. 찾아보기 힘드시다면 이민웅 소령의 '임진왜란 해전사'를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정리가 매우 잘되어 있는 책입니다. 1592년 옥포부터 당항포, 한산도, 부산포까지 1년 동안 해전에서 발생한 전사자는 지휘관급까지 합쳐 38명인가 39명인가 그랬습니다.

당시 조선 수군은 가장 큰 손실을 입힌건 왜군과의 전투나 형벌같은게 아니라 흉년과 역병이었습니다. 그것때문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수천명이 죽어나갔죠.

간혹가다 뭔가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시는것 같던데 '전투중에 죽은 병사들보다 군율에 의해 처형당해 죽은 병사가 더 많았다.'는 말은 그만큼 전사자가 적었다는 뜻이지 꼬장부리며 병사들 갈구고 괴롭혔다는 뜻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건 원균이나 하는 짓이죠.
Commented by 炎帝 at 2008/12/03 14:11
전사자가 적은 것도 있지만 제가 아는 처형의 이유중 제법 많은 수가
백성들의 재산을 약탈하거나 군수물자를 빼돌리거나 탈영한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처형되었던 점을 생각하면
당시 조정에 제대로 된 보급을 받지 못했던 수군들이 도적으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군율을 엄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흉년과 역병등이 괴롭혔다면 군율을 엄하게 적용하지 않을때 약탈이 일상화되었을지도 모르니까요.
Commented by zert at 2008/12/03 16:48
"백성들의 재산을 약탈하거나 군수물자를 빼돌리거나" -> 이와 같은 경우는 지방 향리나 색리들, 아전들에 해당하는 경우입니다. 때로는 필요한 병력을 확보해서 동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곤장을 치거나 사형을 당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 되서는 난중일기를 참고해 보시면 됩니다.

탈영 계획, 시도를 한 병사들의 경우에는 전원이 처형당하거나 주모자(그 일당)들만 처형 당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래저래 싸우다 죽은 조선수군 보다는 군률을 어겨 죽은 병졸들(+지방 관리-아전, 도훈도 등등)이 더 많습니다 ㅡ.ㅡ;; 원균이야 rezen님 말씀처럼 굶겨죽이고, 떄려죽이고 등등으로 죽였죠=_=;;

아, 그리고 위에 백성들의 재산을 약탈했다기 보다는 토색질에 가깝습니다. 묘하게 다르죠~_~
Commented by 解明 at 2008/12/03 16:32
그래도 그냥 '갈구'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군령에 입각해서 처벌하는 것이었으며 본인도 그것을 지켰으니 융통성 없다는 소리는 들을 지언정 그 앞에서 딴소리는 할 수 없었겠죠. 그야말로 'FM'의 전형이랄까요?
Commented by 炎帝 at 2008/12/03 16:42
저도 그점에는 동의합니다. 더군다나 다른 곳에선 밀리고 있던 초기같은 경우는
더더욱 군율을 엄하게 적용했던게 옳았을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아, 넬슨과 이순신을 비교하던 글에선 넬슨은 이순신과 반대로 가족같은 분위기였다고 말하더군요.
엄격함과는 거리가 먼듯 염문도 자주 뿌렸다 하고....
(난중일기에 나온 기록을 보면 이순신 장군도 여자는 제법 있었다고 하지만...;;)
Commented by schnee at 2008/12/03 20:09
무서운 분이었군요...하지만 능력있으셧으니...OK

그리고, 넬슨과 이순신을 비교하는건 말도안되죠....넬슨과이순신의 전술이 얼마나 차이가 컸는데...

넬슨은 단지 적함대를 둘로나눴을뿐이고.... 이순신은...적에게 OTL을 외치게했을뿐이고....퍽!
Commented by 炎帝 at 2008/12/04 09:03
일본의 어느 제독도 자신은 넬슨보단 뛰어나지만 이순신장군보단 못하다는 말을 했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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